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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미끼로 이용 당해도… 갈 곳 없어 가해자에 의지 ‘악순환’ [심층기획-정신장애여성들 성착취 무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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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1-17 06:00:00 수정 : 2023-01-17 13: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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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없는 정신장애여성 위험 노출
경제적 취약하고 정서적 고립된 상태
원치 않아도 가해자 강요 거부 못해
성매매 착취관계 스스로 끊기 어려워

장애인·여성 양쪽서 배제된 보호문제
장애인 성폭력 중 정신장애인 80% 넘어
인신매매방지법엔 아동·여성·장애인만
정신장애여성 문제 어디서도 논의 안돼

안정적 주거지원부터 시작해야
정신질환여성 고용률 남성의 60% 수준
경제력·보호망 없어 거리로 나온 사례도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환경조성 시급

김진아(가명·여)씨는 지적장애가 있다. 그가 성착취 굴레에 빠진 건 20세 때였다. 가족이 없는 김씨에게 이명호(가명·남)씨는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김씨는 이씨와 함께하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은 기대와 달랐다. 이씨는 돌변했다. 사랑한다며 다가왔던 그는 김씨를 착취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성매매를 강요하고 성매수대금을 가져갔다. 김씨의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연금도 모두 빼앗아 유용했다.

김씨는 결국 이씨와 이혼했다. 그러나 성착취는 끝나지 않았다. 이씨를 벗어난 김씨는 갈 곳이 없었다. 이씨가 김씨의 수급비와 연동된 체크카드를 가져간 탓에 돈도 없었다. 돈이 필요했던 김씨에게 유일한 생계수단은 성매매였다. 김씨는 랜덤채팅 앱을 열어 성매매에 나섰다. 김씨는 현재 랜덤채팅 앱을 통해 만난 애인과 동거 중이다. 김씨는 이제 안정을 찾을까.

김씨를 지원한 단체 측은 “김씨 애인은 동거생활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크지 않다”며 “애인과 헤어진다면 김씨는 다시 성착취에 노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신적 장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부터 시행된 인신매매방지법은 인신매매 범주에 성매매, 성착취, 노동착취 등을 목적으로 한 모든 행위를 포함시켜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게 했다. 하지만 성착취는 아동·청소년과 외국인 노동자 피해 중심으로 논의되고, 장애인은 노동착취 피해와 관련해 논의됐다. 정신적 장애 여성의 성착취 문제는 장애인의 문제로도, 여성의 문제로도 조명받지 못한 셈이다. 인신매매방지법 시행에 맞춰 정신적 장애 여성이 성착취에 빠지는 배경을 살펴보고 예방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신적 장애 여성 성착취 증가… “사각지대 해소 영향”

16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상담소에 접수된 장애인 성폭력 상담은 연간 약 4만건씩 이뤄지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 3만9286건 △2020년 3만5379건 △2021년 3만9012건 수준이다. 이들을 장애 유형별로 보면 정신적 장애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020년 성폭력 상담을 받은 피해자 2093명을 조사한 결과 발달장애인이 1534명으로 73.3%, 정신장애인이 169명으로 8.1%를 차지했다. 보통 정신적 장애라고 하면 자폐, 지적, 정신 장애가 있고, 자폐와 지적장애를 묶어 발달장애로 표시한다.

특히 최근 들어 성매매 피해를 토로한 장애인 상담은 급증했다. 2019년 172건이던 관련 상담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2020년 149건으로 소폭 감소하더니 2021년에는 417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경제적·정서적 취약한 상태서 거리로 향해

문제는 성착취를 경험한 정신적 장애 여성이 김씨처럼 성착취의 굴레에 다시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부실한 사회안전망 속에서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정서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성착취범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신적 장애 여성들 가운데 정기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비율은 극히 낮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발표한 ‘2022년 상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적 장애 여성의 고용률은 18.4%에 불과하다. 장애인 전체(36.4%)보다 낮을 뿐 아니라 정신적 장애 남성(29.0%)과 비교해도 낮은 수치다. 해당 조사 시점이었던 지난해 5월 전체 고용률은 63.0%, 여성 고용률은 53.8%였다.

돈이 없는 상태에서 머물 곳마저 없다면 이들은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노숙인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 노숙인의 42.1%는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남성 노숙인의 정신질환 비율(15.8%)을 크게 웃돌았다.

여성 노숙인을 지원하는 열린여성센터 서정화 소장은 “정신질환이 있으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어려워한다”며 “잘 곳이 없을 때 경찰서나 동사무소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두려움에 떨면서 어딘가 숨어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질환으로 인해 거리 노숙 이탈이 어려워지고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라며 “거리는 온갖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는 공간이지만, 여성의 경우 특히 성폭력을 경험할 확률이 높다”고 부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 착취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한 거리 노숙인 지원 활동가는 “여성 노숙인 중에는 그날 잘 곳과 밥 먹을 돈을 구하기 위해 일용직처럼 채팅 앱으로 성매매를 하는 이들도 있고, 남자친구가 생기면 그 집에서 생활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남자친구 집으로 가면 대부분 폭력을 경험하는데, 다른 곳에 갈 데가 없다 보니 참고 지내게 된다”고 덧붙였다.

◆정신적 장애 증상 고려 필요… 안정적 주거 제공해야

장애 증상이 겹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여성인권센터 ‘보다’의 김수민 사무국장은 “정신적 장애가 있는 성착취 피해자는 친밀한 관계가 끊어지거나 거취가 불안해질까 봐 가해자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린다”면서 “피해자 지원기관이 이들을 도우려 해도, 성매매나 착취 관계를 끊어내라고 설득하기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해자 처벌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김 사무국장은 “어렵게 성착취 가해자를 고소·고발해도, 가해자 측이 피해자에 금전을 주겠다거나 ‘나중에 결혼하자’는 식으로 꼬드겨서 고소를 취하하게 한다. 그래놓고 고소를 취하하면 ‘나 몰라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정신적 장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를 예방하려면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 소장은 “환청이 들려서 혼잣말을 하는 등의 증상을 보이는 이들은 공동생활을 하지 못한다”며 “시설에 들어갔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민원을 넣고, 싸우게 되니 결국 ‘시설에 절대 안 간다’며 길로 나오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이들이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지원주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소장도 “가족과 단절되고 외로운 상황에 있는 정신적 장애 여성이 성착취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며 “지역사회 안에 다양한 연계망을 두고 지속적으로 사례를 관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민 30만명 서대문에 관리직원 11명뿐… 턱없이 부족한 현장인력

 

지역사회의 정신질환자를 발견하고 상담하는 역할을 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직원 1명이 관리하는 정신질환자가 평균 2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각지대에 놓인 정신질환자를 추적·관리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라는 비판과 우려가 제기된다.

 

16일 세계일보가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보건복지부 정신건강복지센터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 종사자 수는 총 4670명이다. 2018년 2419명에서 2019년 2930명, 2020년 3687명, 2021년 4066명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2018년에는 정신질환자를 담당하는 사례관리자 1명이 40.7명을 관리했지만 2019년에는 34.2명, 2020년 27.9명, 2021년 26.5명까지 담당 인원은 점차 낮아졌다.

 

반면 이에 대해 현장 관계자들은 여전히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정신질환이 있는 노숙인을 지원해온 열린여성센터 서정화 소장은 “정신질환자로 낙인이 찍힐까 봐 등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며 “1인당 사례관리 수를 보려면 정신질환 등록인 수가 아닌 거주민 수와 비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서울 서대문구 주민만 약 30만명인데 센터 직원은 11명뿐”이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우울증 문제가 심화했는데, 이 인원이 주민 전체의 우울증이나 자살 등 문제를 감당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2021년 한 해 동안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235만7500여건으로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8년과 비교해 3배 이상 올랐다.

 

서 소장은 “중증 정신질환이 있어도 정신과 외래 진료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 사람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직원들이 직접 찾아가서 도와줘야 하는데, 지금 인력으로는 센터로 찾아오는 사람을 감당하기도 벅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신질환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입원을 어렵게 만들었으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서비스 시스템을 갖춰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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