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강화’ 7글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입력 2022.03.31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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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강화. 몇 글잡니까? 7글자로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어제(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줄곧 심각한 분위기로 진행되던 '새 정부 성평등정책 강화방안 토론회' 장에서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성가족부 개편 방안 발제를 맡은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앞으로의 추진 방향을 이렇게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 등장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7글자 공약, '여성가족부 폐지'를 꼬집은 셈이죠.

이날 토론회의 주제는 '여성가족부 폐지론 진단과 성평등정책 정부조직 개편방안'이었습니다.

토론회에 앞서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피켓팅을 마친 여성단체 회원들은 이번엔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현장의 이야기를 전할 땐 절박하고, 참담하고, 비참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 여가부 폐지는 "머리는 자르고 손발만 남겨두는 격"

토론을 맡은 황정미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두고 "머리는 자르고 손발만 남겨두는 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가부 업무를 기능적인 관점에서 복지부, 교육부, 법무부 등 여러 부처로 분산하는 방안은 성평등 관점에서 볼 때 '컨트롤 타워'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는 겁니다.

김경희 중앙대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혹자는 새 정부에서 여가부의 기능을 찢어 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턱도 없는 소리"라며 "총괄 기능이 부여되지 않을 땐 영혼이 없이 기능만 남아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성계가 이렇게 여가부의 '총괄 기능'을 강조하는 건, 그간의 경험 때문입니다. 무임소장관(국무위원이지만 특정 부처를 관장하지 않는 장관)과 위원회 형태의 성평등 기구, 독립 부처로서의 여성가족부까지 두루 겪어보니,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독립 총괄부처였다는 겁니다.

다양한 정부 부처 내 성평등 담당부서를 연결하고, 더 나아가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연결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이들은 설명합니다. 특히 법률을 제안하거나, 국무회의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주무부처가 사라지면 그간의 성주류화 정책들이 와해될 수 있다고도 우려했습니다.

■ "어제까지 싸웠던 법무부…이젠 젠더폭력 맡는다?"

좀 더 구체적인 우려를 내놓은 단체도 있었습니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의 이하영 공동대표는 젠더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성평등 전담 부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법무부로 해당 업무가 이관될 경우 온전히 이해받거나 충분한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는 "법무부는 그동안 젠더폭력 정책에 방해가 됐던 부처 중 하나"라며 "남성중심적 질서를 반영하고 여성에 대해 차별적인 법을 가장 충실하게 수호하는 부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2020년까지 법무부의 반대로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자는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고, 지금도 법무부의 반대로 폭행·협박이 없는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의 최형숙 대표도 가족 정책은 성평등 정책과 분리할 수 없다며, 한부모가족 지원 정책 등의 타 부처 이관에 반대했습니다. 차별과 배제가 단순히 법과 제도의 문제를 넘어서 가부장적 사회 구조와 인식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최 대표는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형태의 가족, 1인 가구, 공동체 형태의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그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정책을 준비할 수 있는 일을 주도할 수 있는 부서는 여성가족부 외에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권한과 예산을 제대로 준 적이 있는가?"

여성계는 여성가족부의 명칭이 달라질 수 있다는 데는 공감했지만, 성평등 정책 전담 부처의 권한과 예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김경희 중앙대 교수는 "전담 부처가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이나 예산을 줘본 적이 있었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이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제안하는) 추진 방향"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여성가족부가 폐지될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성평등 정책 추진 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거라며, 성평등 정책을 지도·관리할 수 있는 전국적 거점으로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희경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는 주요 업무 목록에도 등장하지 않는 과업에 많은 행정력을 투입할 의지를 가진 자치단체장이 과연 얼마나 있겠느냐"며 "성평등정책 추진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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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가족부 강화’ 7글자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입력 2022-03-31 08:09:19
    취재K

"여성가족부 강화. 몇 글잡니까? 7글자로 정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어제(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줄곧 심각한 분위기로 진행되던 '새 정부 성평등정책 강화방안 토론회' 장에서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성가족부 개편 방안 발제를 맡은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앞으로의 추진 방향을 이렇게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 등장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7글자 공약, '여성가족부 폐지'를 꼬집은 셈이죠.

이날 토론회의 주제는 '여성가족부 폐지론 진단과 성평등정책 정부조직 개편방안'이었습니다.

토론회에 앞서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피켓팅을 마친 여성단체 회원들은 이번엔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현장의 이야기를 전할 땐 절박하고, 참담하고, 비참하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 여가부 폐지는 "머리는 자르고 손발만 남겨두는 격"

토론을 맡은 황정미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여성가족부 폐지를 두고 "머리는 자르고 손발만 남겨두는 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가부 업무를 기능적인 관점에서 복지부, 교육부, 법무부 등 여러 부처로 분산하는 방안은 성평등 관점에서 볼 때 '컨트롤 타워'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는 겁니다.

김경희 중앙대 교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혹자는 새 정부에서 여가부의 기능을 찢어 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턱도 없는 소리"라며 "총괄 기능이 부여되지 않을 땐 영혼이 없이 기능만 남아있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여성계가 이렇게 여가부의 '총괄 기능'을 강조하는 건, 그간의 경험 때문입니다. 무임소장관(국무위원이지만 특정 부처를 관장하지 않는 장관)과 위원회 형태의 성평등 기구, 독립 부처로서의 여성가족부까지 두루 겪어보니,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독립 총괄부처였다는 겁니다.

다양한 정부 부처 내 성평등 담당부서를 연결하고, 더 나아가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연결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이들은 설명합니다. 특히 법률을 제안하거나, 국무회의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주무부처가 사라지면 그간의 성주류화 정책들이 와해될 수 있다고도 우려했습니다.

■ "어제까지 싸웠던 법무부…이젠 젠더폭력 맡는다?"

좀 더 구체적인 우려를 내놓은 단체도 있었습니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의 이하영 공동대표는 젠더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성평등 전담 부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법무부로 해당 업무가 이관될 경우 온전히 이해받거나 충분한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는 "법무부는 그동안 젠더폭력 정책에 방해가 됐던 부처 중 하나"라며 "남성중심적 질서를 반영하고 여성에 대해 차별적인 법을 가장 충실하게 수호하는 부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2020년까지 법무부의 반대로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자는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고, 지금도 법무부의 반대로 폭행·협박이 없는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의 최형숙 대표도 가족 정책은 성평등 정책과 분리할 수 없다며, 한부모가족 지원 정책 등의 타 부처 이관에 반대했습니다. 차별과 배제가 단순히 법과 제도의 문제를 넘어서 가부장적 사회 구조와 인식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최 대표는 "한부모가족, 조손가족,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형태의 가족, 1인 가구, 공동체 형태의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그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정책을 준비할 수 있는 일을 주도할 수 있는 부서는 여성가족부 외에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권한과 예산을 제대로 준 적이 있는가?"

여성계는 여성가족부의 명칭이 달라질 수 있다는 데는 공감했지만, 성평등 정책 전담 부처의 권한과 예산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김경희 중앙대 교수는 "전담 부처가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이나 예산을 줘본 적이 있었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이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제안하는) 추진 방향"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여성가족부가 폐지될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성평등 정책 추진 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거라며, 성평등 정책을 지도·관리할 수 있는 전국적 거점으로서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희경 한국성인지예산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는 주요 업무 목록에도 등장하지 않는 과업에 많은 행정력을 투입할 의지를 가진 자치단체장이 과연 얼마나 있겠느냐"며 "성평등정책 추진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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