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성가족개발원, 2020년 관련 보고서 발간
“법 테두리 밖, 문제 해결에 상당한 시간 소요”

경계성 지적 지능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지능지수(IQ)는 일반적으로 70~85 사이다. 흔히 ‘경계성 지능장애’라고 불리는데, 이들은 평균보다 낮은 지적 능력 때문에 생활과 학습 등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물론 경제적·사회적으로 소외된다. 하지만 지적장애 수준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도권 복지도 비껴간다. <뉴스포스트>는 경계선에서 위태롭게 외줄타기 하는 우리 사회 약자들에 대해 지면을 할애했다. -편집자 주-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그래픽=뉴스포스트 강은지 기자)

[뉴스포스트=이별님 기자] ‘경계성 지능장애’는 ‘경계선 지능’, ‘경계성 지적장애’, ‘경계성 지적 지능’ 등으로 불린다. 평균보다 낮으나 지적 장애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 지적능력을 의미한다. 지능지수(IQ) 70~85가 일반적이다. 90~100에 이르는 평범한 성인보다 낮은 지능지수지만, 경도 지적장애에 해당하는 50~69보다는 높다.

경계성 지능장애에 해당하는 이들은 사회성이나 학습 능력 등이 비장애인보다 떨어진다. 사회로 나가 직업을 갖고, 업무 처리를 하는 데 비장애인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경도 지적장애에 해당하는 게 아니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복지 혜택을 받기도 어렵다. 지자체에서 경계성 지능인 관련 내용을 조례로 지정하는 추세나, 아직은 시작 단계다.

의학적·사회적으로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에 위치한 경계성 지능인들은 각종 범죄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판단력과 인지능력이 비장애인보다 떨어져 쉽게 위해를 가할 수 있지만, 장애인처럼 어느 정도 법의 보호를 받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경계성 지능장애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 역시 이들을 더욱 위험에 빠트리는 데 한몫한다.

특히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들과 관련해선 사안이 심각하다. 극단적인 경우 성매매 등 성범죄의 타깃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 지난 2020년 발간한 보고서는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의 성매매 문제를 다룬 국내의 몇 안 되는 연구다. <뉴스포스트> 관련 보고서들을 토대로 경계성 지능인 여성 성매매 문제를 주목해봤다.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에 놓인 성매매의 늪

홍미영 부상여성가족개발원 선임연구위원과 박혜림 위촉연구원이 발표한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의 성폭력·성매매 피해 예방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의 성매매는 자발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들은 자기 의사 표현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고, 타인의 지시에 순종하는 성향이 높아 성범죄의 강압적 상황에서 취약하다. 성매매 피해사례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자발적 성매매자로 모는 경우가 많아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다.

실제로 2016년 당시 중학생이던 경계성 지능인 A모 양은 남성들로부터 떡볶이와 모텔비를 받았다는 이유로 자발적 성매매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법은 A양이 장애인 범주도 아니고, 일부 값을 받았으니 성폭행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사건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A양 측이 민사 소송에서 일부 승소하기도 했지만, 경계성 지능인 여성이 성범죄에 얼마나 취약한 지 단적으로 보여줬다.

지난해 8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확인됐다. B모 씨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통해 자신의 중학생 딸이 고등학교 남학생들로부터 성범죄를 당했지만, ‘합의 하의 성관계’로 무혐의 처리됐다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는 “IQ 74의 딸이 일주일 동안 3회에 걸쳐 3명의 고등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딸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지 않다며 경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며 “사건의 충격 때문에 딸은 가족성상담센터에서 치료를 받는 등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경계성 지능장애 청소년의 성범죄 피해사실을 고발한 아버지의 청와대 청원.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경계성 지능장애 청소년의 성범죄 피해사실을 고발한 아버지의 청와대 청원.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이 성매매의 덫에 빠지는 데에는 일정부문 경로와 유형이 있다. 가정이 불우하거나 청소년기 또래 집단으로부터 배제된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들이 가해자에게 유인돼 그루밍(Grooming) 성범죄에 노출되고 성매매로 이어진다. 운 좋게 사건화 되면 수사가 이뤄지고, 피해 여성은 쉼터 등 보호시설에 입소하게 된다. 하지만 경계성 지능인 특성상 퇴소한다고 해도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지능이 낮다고 피해가 덜하지 않는다. 성매매 피해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은 여느 성범죄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문제를 겪는다. 보고서는 피해 여성 보호 지원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했다. 그는 “지원시설에서는 한 여성이 경계성 지능장애가 있는지 몰랐다가 성매매 사건 등으로 피해자 지원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성폭력이나 성매매를 장기간 겪으면서 경계성 지능장애에서 지적장애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증언했다.

성매매의 덫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성매매 피해사례에 해당하는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은 국내에 얼마나 될까. 불행하게도 명확한 통계는 나타나 있지 않다. 기존 피해사례는 연구자들이 장애인 단체나 언론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사례를 찾아낸 것이다. 이 같은 현실에서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을 성매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촘촘한 정책이 시급하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 지난해 9월 발간한 ‘사각지대의 경계성 지능 장애 여성, 더 촘촘한 안전망으로 성범죄 예방을’에 따르면 피해자 보호지원, 의료인, 특수교육 전문가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은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 성범죄(성매매 포함)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공통적으로 ▲ 가정의 역할 ▲ 학교 및 직장 교육 ▲ 피해 예방 맞춤형 프로그램 ▲ 제도 장치 ▲ 정부 및 지역 사회 개입 등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계성 지능장애의 법적 근거 확보가 절실하다. 경계선 지능인 모두가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적응과 일상생활 영위가 어려워 성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성범죄가 발생해도 인지하지 못해 피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한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이 같은 현실을 법이 인정하고, 이에 따른 수사 대응 매뉴얼 확보나 조력인 지원 등이 필요하다.

교육은 다방면에서 진행돼야 한다. 1차적 안전망을 제공해야 하는 가정에서는 부모를 상대로 인식 개선 교육 등이 필요하다. 경계성 지능 아동을 위해서는 학교에서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 도입이 요구된다. 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성교육과 심리·언어 치료 등 역시 필요하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반복적 기능을 연마할 수 있는 직업훈련도 진행돼야 한다.

여성가족부 등 관련 정부 부처의 역할도 중요하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여가부가 추진 중인 ‘정서・행동장애 청소년 지원사업’을 경계성 지능인까지 확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지역의 사회복지관과 청소년상담복지센터, 특수교육지원센터, 학교 위센터, 정신건강 복지센터 아동청소년사업 등과 연계해 경계성 지능장애로 인한 성범죄 피해 대상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사업을 설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경계성 지능장애 여성 성매매 문제 해결에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보고서를 발간한 홍미영 연구위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경계성 지능장애 성범죄 문제는 이제 화두가 되는 단계다. 기업 등에서 반향이 있었다”면서도 “법이 만들어지지 않아 법 제정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까지 진행한 것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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