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집결지 없앤다더니 이제는 나몰라라···전주 서노송예술촌 가보니

김창효 선임기자

[현장에서] ‘문화재생’ 전주 선미촌 가보니

전북 전주시 선미촌 내 성매매 업소 유리문에 ‘철거’라고 적혀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전북 전주시 선미촌 내 성매매 업소 유리문에 ‘철거’라고 적혀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성매매 집결지에서 벗어나 예술마을로 변신했던 전북 전주의 ‘서노송예술촌’이 주변의 무관심 속에 빠르게 쇠락하고 있다. 전주시는 ‘성매매 집결지 폐쇄’ 목적을 달성했다며 손을 떼고 뒷짐만 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찾은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 서노송예술촌 일대는 을씨년스러웠다. 골목 곳곳에는 성매매 집결지 당시 업소로 쓰였던 건물들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유리방’으로 불리며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창 건물 내부에는 잡동사니가 그대로 보였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했다.

슈퍼를 운영하는 임모씨(64)는 “몇 해 전까지는 행사를 한다며 사람들이 북적거렸는데 지금은 담배 사러 오는 손님밖에 없다”며 “밤이면 인기척이 없어 돌아다니기도 겁난다”고 말했다.

60여년 동안 전북 최대 성매매 집결지로, ‘선미촌’으로 불렸던 이곳은 2014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쇄돼 예술마을로 변모했다. 전주시는 성매매 업소와 종사자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대신 문화재생을 통해 차츰 바꿔나가는 방식으로 집결지를 폐쇄해 나갔다.

전주시는 2022년까지 국비와 시비 등 210억원을 투입해 빈집과 성매매 업소를 사들였다. 매입한 건물들은 예술 관련 시설로 탈바꿈시켰다.

2018년 선미촌 한복판에 예술책방 ‘물결서사’가 처음 문을 열었다. 이어 소통 협력공간인 ‘성평등전주’, 마을사 박물관인 ‘노송늬우스박물관’, ‘전주시 새활용센터 다시봄’, ‘뜻밖의 미술관’, ‘놀라운 예술터’ 등이 차례로 들어섰다.

녹지와 휴식 공간 등을 갖춘 기억공간과 인권공간도 만들어졌다. 선미촌 일대 2만2760㎡는 문화·예술인이 창작 활동을 하고 여성 인권이 살아 숨 쉬는 현장으로 변화하는 듯했다.

2017년 6월 선미촌에 입주한 전북 전주시 ‘현장시청’ 앞을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가고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2017년 6월 선미촌에 입주한 전북 전주시 ‘현장시청’ 앞을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가고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하지만 2022년 이후 전주시는 시가 주도하는 사업을 중단했다. 성매매 업소 폐쇄로 공공의 역할이 끝났다며 민간에 주도권을 넘긴 것이다. 국비로 추진하던 사업이 끝나자 거점시설도 민간위탁이나 임대 등으로 운영 방식을 바꿨다.

현재 전주시가 직영하는 곳은 ‘노송늬우스박물관’이 유일하다. 거점시설 중 ‘뜻밖의 미술관’과 ‘놀라운 예술터’(운영지원금 각 6000만원), ‘성평등전주’(10억3900만원), ‘새활용센터 다시봄’(3억8800만원)은 민간 위탁되고 있다. 노인교실·어린이시설 등이 들어설 서로돌봄플랫폼은 지난해말 완공 예정이었으나 여전히 공사 중이고, 성평등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던 건물은 아예 용도를 정하지 못해 방치된 상태다.

이처럼 시 지원이 줄면서 ‘리빙랩’ 등 주요 사업과 문화행사가 중단됐고, 방문객도 줄고 있다. 선미촌 재생을 주도했던 전주시 ‘서노송예술촌팀’도 2022년 조직개편으로 사라졌다.

현재 예술촌은 도심 속 폐허가 되고 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A씨는 “지자체 관심이 멀어지고 어두운 이미지 때문에 시민들이 오기 꺼린다”면서 “예술가들이 빈집을 빌려 들어오고 싶어도 높은 임대료 때문에 엄두를 못 낸다”고 말했다.

전주시는 뒷짐만 지고 있다. 성매매 업소가 모두 퇴출된 만큼 서노송예술촌 사업은 이미 성공했다는 주장이다. 허갑수 전주시 도시정비과장은 “문화재생사업은 원래 선미촌 퇴출이 목적이었다”면서 “이제는 행정에 기대지 말고 토지주나 건물주 등 민간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조선희 전 성평등전주 센터장은 “지자체가 성매매 집결지를 민관 거버넌스를 통해 폐쇄했지만 아직 부족하다”면서 “전주시나 의회가 외면하지 말고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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