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성매매 6명,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주말엔][형사공탁 1년]③

입력 2023.11.19 (07:00) 수정 2023.11.2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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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법원에 돈을 맡기는 제도입니다. 과거에는 공탁서에 피해자의 이름·주소·주민번호를 반드시 적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형사공탁 특례'가 신설되면서, 피해자 인적사항 대신 사건번호 등만 적으면 공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절차는 간단해졌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새 제도가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KBS는 형사공탁 특례 시행 1년을 앞두고, 관련 판결문 988건을 분석했습니다. 다섯 차례에 걸쳐 형사공탁 악용 실태와 개선 방향을 연속 보도합니다.

1. [형사공탁 1년①]전직 조폭 두목의 살인…3억 5천만 원 맡기고 '4년 감형'
2. [형사공탁 1년②]연예인 출신 대표님의 '기습공탁'…"돈 대신 엄벌을"
3. [형사공탁 1년③]초등학생 성매매 6명,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4. [형사공탁 1년④]판결 988건 최초 분석…절반 이상 '기습공탁'
5. [형사공탁 1년⑤]개정 논의 잇따라…'피해 회복' 의 시작은?


"초등학생과 성매매를 했는데, 왜 집행유예입니까!"

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 여름 날.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 여성·아동 인권단체 30여 곳이 모였다. 이들은 '성매매는 범죄', '아동·청소년 성매매는 성 착취'라는 손팻말을 든 채 법원 판결을 규탄했다.

지난 8월, 초등생 성매매 판결을 규탄하는 시민단체.지난 8월, 초등생 성매매 판결을 규탄하는 시민단체.

■ 사범대생도, 공무원도 초등생과 성매매

지난해 5월, 20~40대 남성 6명이 SNS에서 만난 초등학생 2명에게 성매매를 제안하고 성관계를 했다. 이들이 성매매 대가로 제안한 건 현금이나 고가의 게임기. 당시 피해 아동들의 나이는 고작 만 12살에 불과했다. 가해자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로, 직업은 사범대생과 공무원, 자영업자 등이었다.


이들은 피해 아동에게 메시지를 보내 '알바를 하면 용돈을 주겠다'고 꾀었다. 대화를 주고받으며 이들이 13살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재판에 넘겨진 이들에게는 미성년자의제강간,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최대 징역 10년, 벌금 5천만 원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다. 검찰이 이들 6명에게 구형한 징역형 형기의 합계는 모두 78년이었다.

하지만 1심 섬고 결과 6명 중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여섯 명의 남성은 피해 아동의 나이를 알고 있었다.여섯 명의 남성은 피해 아동의 나이를 알고 있었다.

오승유/강릉여성아동인권센터 팀장

"SNS 메시지로 피해자들한테 '나이가 어떻게 되냐', '아 애기시구나' 등의 표현을 사용했어요. 명백히 피해자가 초등학교 여학생임을 알고 있었던 거죠."

■ 초등생과 성매매도 집행유예…돈으로 피해 회복?

피해 아동 중 한 명과 합의했고, 다른 피해자에게 공탁을 한 점이 양형 이유였다. 피고들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도 판결문에 담겼다.

두 명의 피해자 중 합의하지 않은 한 명의 피해자 아버지 A씨는 분노했고, 검찰은 항소했다.


초등생과 성매매한 남성 6명에 대한 1심 선고 결과초등생과 성매매한 남성 6명에 대한 1심 선고 결과

피해 아동의 아버지인 A 씨와 연락이 닿은 건 1심 선고가 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휴대전화 속 A 씨 목소리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A 씨는 공탁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고 엄벌을 탄원했다.

여러 차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도 응했다. 납득할 수 없는 재판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피해자 아버지 A 씨

"피해자 측에서 용서를 안 하는데, 반성하는지 안 하는지 그걸 왜 판사가 멋대로 판단을 하는 거죠? 저는 뭐 일절 합의를 하지 않았고 재판부에다가 나는 그 돈 필요 없으니까 엄벌해달라고 1년 넘게 탄원서라든지 저도 뭐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

이달 초 열릴 예정이었던 항소심은 내년 1월로 연기됐다.

보충수업 빌미로…담임교사의 추행

2년 전 경남 창원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었던 30대 B 씨는 자신의 반이었던 C양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 씨는 학생이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며 C양을 교실에 혼자 남게 한 뒤 추행했다. 그로부터 닷새 뒤 B 씨는 보충수업을 이유로 C양을 주말에 학교로 불렀고 또다시 추행했다.




강제 추행사건 수사 도중 B 교사의 또 다른 범행 사실이 드러났다.

2019년에도 자신의 반이었던 여학생을 추행한 것이다. B 교사는 이 학생이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불러내 추행했다. 자신의 원룸에 데려가기도 했다.




줄곧 범행을 부인하던 B 씨는 증인 신문 후에야 사실을 인정했다. B 씨는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그러나 곧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7개월 뒤 열린 항소심에서 B씨의 형은 1년이 줄었다.

앞선 사례와 마찬가지로 피해자 중 한 명과 합의했고, 나머지 피해자에게 공탁한 사실이 유리한 정상으로 반영됐다. 합의하지 않은 C양의 아버지는 재판부에 공탁금 수령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딸이 받았을 정신적 피해를 돈으로 복구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C양 아버지

"사실 우리 집에는 치마가 없어요. 전부 바지밖에 없거든요, 교복도 바지고…. 그런 게 말은 안 해도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고 생각이 돼서 그게 부모로서 자식한테 좀 미안한 게 있죠."

누구를 위한 '형사공탁'인가

'상당한 피해 회복(공탁 포함)'

공탁은 성범죄의 양형기준표에 명시된 감경 사유 중 하나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6월 "누구를 위한 형사공탁인가"라는 논평을 냈다. 형사공탁특례제도 시행으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공탁이 감형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단체는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시행되기 전부터 '성범죄 양형기준’의 감경 사유 중 ‘피해자의 동의 없는 공탁 제외’ 조항을 넣어달라고 요구해왔다.

성폭력의 특성상 피해 회복 역시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이루어질 때만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고,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지는 공탁은 도리어 피해자의 낙담을 가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특히 합의와 공탁 과정에서 오롯이 자신의 의사를 반영하기 힘든 아동 성범죄 사건의 경우 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적 가치관이 완전히 형성되기 전에는 피해의 정도를 당장 가늠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문제 의식이 이어지면서 지난 8월 국회에서는 성폭력 범죄와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의 경우 형사공탁이 정상 참작 감경에 해당하지 않도록 명시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피해 회복을 위한 공탁금을 이유로 한 감형이 성범죄, 특히 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까지 적용되는 게 타당한지 사회적 논의가 시작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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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학생 성매매 6명,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주말엔][형사공탁 1년]③
    • 입력 2023-11-19 07:00:12
    • 수정2023-11-20 17:16:27
    주말엔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법원에 돈을 맡기는 제도입니다. 과거에는 공탁서에 피해자의 이름·주소·주민번호를 반드시 적어야 했습니다.<br /><br />하지만 지난해 12월 '형사공탁 특례'가 신설되면서, 피해자 인적사항 대신 사건번호 등만 적으면 공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절차는 간단해졌지만, 정작 피해자들은 새 제도가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합니다.<br /><br />KBS는 형사공탁 특례 시행 1년을 앞두고, 관련 판결문 988건을 분석했습니다. 다섯 차례에 걸쳐 형사공탁 악용 실태와 개선 방향을 연속 보도합니다.<br /><br />1. [형사공탁 1년①]전직 조폭 두목의 살인…3억 5천만 원 맡기고 '4년 감형'<br />2. [형사공탁 1년②]연예인 출신 대표님의 '기습공탁'…"돈 대신 엄벌을"<br /><strong>3. [형사공탁 1년③]초등학생 성매매 6명,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strong><br />4. [형사공탁 1년④]판결 988건 최초 분석…절반 이상 '기습공탁'<br />5. [형사공탁 1년⑤]개정 논의 잇따라…'피해 회복' 의 시작은?<br />

"초등학생과 성매매를 했는데, 왜 집행유예입니까!"

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 여름 날.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 여성·아동 인권단체 30여 곳이 모였다. 이들은 '성매매는 범죄', '아동·청소년 성매매는 성 착취'라는 손팻말을 든 채 법원 판결을 규탄했다.

지난 8월, 초등생 성매매 판결을 규탄하는 시민단체.
■ 사범대생도, 공무원도 초등생과 성매매

지난해 5월, 20~40대 남성 6명이 SNS에서 만난 초등학생 2명에게 성매매를 제안하고 성관계를 했다. 이들이 성매매 대가로 제안한 건 현금이나 고가의 게임기. 당시 피해 아동들의 나이는 고작 만 12살에 불과했다. 가해자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로, 직업은 사범대생과 공무원, 자영업자 등이었다.


이들은 피해 아동에게 메시지를 보내 '알바를 하면 용돈을 주겠다'고 꾀었다. 대화를 주고받으며 이들이 13살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재판에 넘겨진 이들에게는 미성년자의제강간,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최대 징역 10년, 벌금 5천만 원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다. 검찰이 이들 6명에게 구형한 징역형 형기의 합계는 모두 78년이었다.

하지만 1심 섬고 결과 6명 중 누구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여섯 명의 남성은 피해 아동의 나이를 알고 있었다.
오승유/강릉여성아동인권센터 팀장

"SNS 메시지로 피해자들한테 '나이가 어떻게 되냐', '아 애기시구나' 등의 표현을 사용했어요. 명백히 피해자가 초등학교 여학생임을 알고 있었던 거죠."

■ 초등생과 성매매도 집행유예…돈으로 피해 회복?

피해 아동 중 한 명과 합의했고, 다른 피해자에게 공탁을 한 점이 양형 이유였다. 피고들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도 판결문에 담겼다.

두 명의 피해자 중 합의하지 않은 한 명의 피해자 아버지 A씨는 분노했고, 검찰은 항소했다.


초등생과 성매매한 남성 6명에 대한 1심 선고 결과
피해 아동의 아버지인 A 씨와 연락이 닿은 건 1심 선고가 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휴대전화 속 A 씨 목소리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A 씨는 공탁금을 받지 않겠다고 했고 엄벌을 탄원했다.

여러 차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도 응했다. 납득할 수 없는 재판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피해자 아버지 A 씨

"피해자 측에서 용서를 안 하는데, 반성하는지 안 하는지 그걸 왜 판사가 멋대로 판단을 하는 거죠? 저는 뭐 일절 합의를 하지 않았고 재판부에다가 나는 그 돈 필요 없으니까 엄벌해달라고 1년 넘게 탄원서라든지 저도 뭐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

이달 초 열릴 예정이었던 항소심은 내년 1월로 연기됐다.

보충수업 빌미로…담임교사의 추행

2년 전 경남 창원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었던 30대 B 씨는 자신의 반이었던 C양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B 씨는 학생이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며 C양을 교실에 혼자 남게 한 뒤 추행했다. 그로부터 닷새 뒤 B 씨는 보충수업을 이유로 C양을 주말에 학교로 불렀고 또다시 추행했다.




강제 추행사건 수사 도중 B 교사의 또 다른 범행 사실이 드러났다.

2019년에도 자신의 반이었던 여학생을 추행한 것이다. B 교사는 이 학생이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불러내 추행했다. 자신의 원룸에 데려가기도 했다.




줄곧 범행을 부인하던 B 씨는 증인 신문 후에야 사실을 인정했다. B 씨는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그러나 곧 '형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7개월 뒤 열린 항소심에서 B씨의 형은 1년이 줄었다.

앞선 사례와 마찬가지로 피해자 중 한 명과 합의했고, 나머지 피해자에게 공탁한 사실이 유리한 정상으로 반영됐다. 합의하지 않은 C양의 아버지는 재판부에 공탁금 수령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딸이 받았을 정신적 피해를 돈으로 복구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C양 아버지

"사실 우리 집에는 치마가 없어요. 전부 바지밖에 없거든요, 교복도 바지고…. 그런 게 말은 안 해도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고 생각이 돼서 그게 부모로서 자식한테 좀 미안한 게 있죠."

누구를 위한 '형사공탁'인가

'상당한 피해 회복(공탁 포함)'

공탁은 성범죄의 양형기준표에 명시된 감경 사유 중 하나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6월 "누구를 위한 형사공탁인가"라는 논평을 냈다. 형사공탁특례제도 시행으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공탁이 감형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단체는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시행되기 전부터 '성범죄 양형기준’의 감경 사유 중 ‘피해자의 동의 없는 공탁 제외’ 조항을 넣어달라고 요구해왔다.

성폭력의 특성상 피해 회복 역시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이루어질 때만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고,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지는 공탁은 도리어 피해자의 낙담을 가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특히 합의와 공탁 과정에서 오롯이 자신의 의사를 반영하기 힘든 아동 성범죄 사건의 경우 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적 가치관이 완전히 형성되기 전에는 피해의 정도를 당장 가늠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한 문제 의식이 이어지면서 지난 8월 국회에서는 성폭력 범죄와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의 경우 형사공탁이 정상 참작 감경에 해당하지 않도록 명시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피해 회복을 위한 공탁금을 이유로 한 감형이 성범죄, 특히 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까지 적용되는 게 타당한지 사회적 논의가 시작돼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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