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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보는 순간, 나는 끝났구나”… 여전히 울부짖는 피해자들

입력 : 2023-10-31 18:35:12 수정 : 2023-10-31 21:4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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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8인’ 인터뷰

촬영물 유포 위협 현실감각 상실
트라우마에 신체적 고통도 동반
“사람 못 믿어 집에 갇힌 채 살아”

디성센터 지원 피해자만 7979명
2018년 1315명보다 6배 이상 ↑
“男 형사와 영상 보고 설명 땐 분통”

진흥원 “심리지원·제도개선 필요”

“그 영상을 딱 접하자마자 ‘나는 이제 끝났구나’ ‘이제 나는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을 모든 생존자가 할 텐데 저도 당시에 그랬어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디지털 성범죄 유포 및 유포불안 피해 경험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수록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진술 중 한 대목이다. 진흥원으로부터 연구 용역을 받은 한국트라우마연구교육원은 지난 6∼7월 진흥원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 등으로부터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 20∼40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8명을 심층인터뷰했다.

31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디성센터에서 피해 지원 서비스를 받은 피해자는 7979명인데 2018년 1315명보다 6.1배 증가한 것이다. 피해 유형(중복집계)은 지난 5년간 여성(전체 피해자의 72.4%)의 경우 ‘불법촬영’(32.9%), ‘비동의 유포’(21.9%), ‘아동·청소년 성착취’(15.0%), ‘유포협박’(12.2%) 등의 순이었다. 불법촬영의 경우 20대 이상 피해자들은 주로 친밀한 관계의 지인으로부터 피해를 입는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유포에 대한 극심한 공포, 불안 등 심리적 피해를 경험할 뿐 아니라 재유포 위협에 대한 두려움, 좌절감 등으로 매일을 ‘생지옥’ 속에서 보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피해자는 연구진에 “진짜 모든 외부 활동 다 끊고 그냥 집안에만 박혀서 살았던 것 같다”며 “사람이 너무 싫고 이제 못 믿겠고, 대인기피증처럼 대화하는 것도 너무너무 싫었다”고 호소했다.

 

보고서는 피해자들이 첫 불법촬영물 유포 인식 단계에선 “세상이 무너지고 인생이 끝난 것 같은” 심적 동요와 함께 급격한 스트레스에 따른 공포와 불안, 마음의 부대낌 등 ‘갑작스럽게 흔들린 현실의 장’을 경험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후 지속적 유포 단계에선 현재의 심적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고통과 현실감각을 상실한 파편화된 일상, 극심한 트라우마에 따른 신체적 고통까지 동반한 ‘실존적 생지옥’을 겪는다.

 

이어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직장, 학교를 관두고, 꼭 만나야 하는 사람 이외 대인관계를 끊어버리는 ‘사회적 단절’ 단계가 다가오며 불특정 다수에 대한 두려움, 트라우마 등에 시달리게 된다. 한 피해자는 “누군가가 나를 건드리는 것 자체가 아예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탈 때는 사실 눈을 감고 가만 있는다”고 토로했다.

 

무한·영속 확대라는 디지털 성범죄의 속성상 피해자들은 오프라인 성범죄를 반복적으로 겪는 것과 비슷해 지속적인 학대 피해와 같은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게 연구진 조언이다. 하지만 △생존자 보호에 대한 낮은 인식 △법적 보호 체계의 취약함 △사회적 편견에 익숙한 불법 문화 등으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이 같은 고통은 쉽게 치유되지 않고 있다. 한 피해자는 “경찰서에 갔을 때, 남자 형사가 있는 상황에서 그 영상을 같이 켜고 당시 (유포물의) 상황을 설명하라고 얘기해 분통이 터지고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회복을 위해선 트라우마 이해 기반 심리적 지지와 가해자 처벌을 위한 법적 대응, 생존자 보호를 위한 적극적 실천을 당부했다. 대응 및 개선 사항으로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특성을 반영한 심리지원 개입과 법률과 제도 개선, 수사 방식의 개선 등을 제안했다.


송민섭 선임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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